그믐내음 전시회

그대는 어쩌다 과거가 되었을까 나의 잘못일까, 어찌 그대의 잘못이랴 별을 세는 것과 당신에게 안부를 묻는 것 중 나는 별을 세며 당신의 안부를 속으로 묻는다 안부를 묻다가 당신의 하루가 궁금해지고 하루를 묻다가 당신의 지난날의 고민이 궁금해지고 고민을 묻다가 당신의 마음이 궁금해지고 마음을 묻다가 당신의 곁에 남아있고 싶어지면 안부를 물으러 왔다가 눈치 없...

옛일을 꺼내 보는 일이 아, 어리석어 보인다면 그날이 그 추억을 꺼내는 마지막 날이다 분명 다시 기억을 꺼내 보아도 울컥 아려오는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그리움에 젖기도 전에 일부러 멀어지는 것이다 추억 속에 담긴 행동과 목소리와 공기가 여전히 그대로겠지만 어리석었던 자신조차 그대로라 일부러 멀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하는 가게를 적어 버릇한 것은 그대와 가기 위함이었다. 좋은 곳에서 함께 웃고자 하는 소망이 어느새 전국 맛집 책자가 되었다. 그뿐이랴 함께 가면 좋을 곳을 적어 놓기도 했다. 흙바닥이든 맨바닥이든 함께 걷기만 해도 평화롭고 행복하겠지만, 그래도 그대 닮은 꽃길을 걸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그대는 북극성이 되었나 보다. 하염없이 ...

그녀가 떠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나에게서 나는 그녀에게서 본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나가 되었으니. 두 사람이 하나로 되지는 못하니 똑같은 자아상이 두 개인 꼴이다. 마치, 두 거울이 마주한 채로 서 있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기에는 탁월하지만 새로운 창조 없이 같은 단면을 반복하기만 한다. 즉, 당신이 나고 내가 당신일 때 짧은 황...

두리번 거리던 마음은 무언가를 깨닫고 다시 가만히 있기를 반복한다 깨달은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있길래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기로 한 것일까 들리는 말로는 시간이 흘러 철이 제법 든 게 로지 묘하게 녹슨 모습에 그리 말이 오가나 보다 그 속에서 홀로 중얼거리는 말이 귀에 감긴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그렇지 귀담아 들어보니 묘하게 녹슨 모습은 묘안을 떠올리느라 ...

붉은 보름달 너머로는 보이지 않는 달의 그림자 그곳에는 붉은 실을 엮는 노파 술사가 있네 사람의 연을 묶는 것이 취미이자 업인 술사는 푸른 땅에서 욕심 가득한 간섭이 귀찮아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네 모두가 잠자는 시간에 훌쩍 떠나 도착한 곳은 보름달 너머의 달의 그림자 달이 돌고 돌아도 노파의 망토 자락 볼 수 없다네 사라진 술사에 세상이 시끄러...